내가 가장 자주 찾아갔던 서장대

2024. 10. 28. 21:16일상 이야기

용산공원을 다녀온 이후에
혼자 출사를 갈 수 있다면
어딜 갈까 생각하던 중
아내가 근무라 혼자 있는 주말에
불현듯 서장대가 생각나서 찾아갔다.
 
중고등학생 시절에
공부하러 선경도서관에 자주 갔었다.
큰 규모의 도서관이고, 열람실도 널찍하며,
매점도 있고, 구내 식당에서 파는 제육덮밥은 맛있었다.
형을 따라 공부를 하러 갔었고,
책을 빌려 보기도 했었다.
운동삼아 가기에 좋은 거리였고,
여름에는 더위를 피해 가기도 했었다.
 
그리고 선경도서관에서
화성 성벽을 타고 올라가다보면
그 꼭대기에 서장대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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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긴 선경도서관 후문에서 보이는 모습이다.
그 시절에 저런 귀여운 곰돌이나 멋진 기와집 지붕을 가진 건물은 없었다.
그저 그런 빌라들이
허름하게 즐비했을 뿐이었다.
그냥 골목길이었고, 거길 다니는 내게
별다를게 없는 곳이었으나,
오랜만에 돌아온 이 곳에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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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경도서관에서 화성 성벽까지 올라왔을 때
모습이다. 여기까지 올라 오는 것만 해도
경사가 급해서 꽤나 숨이 찬다.
그땐 거의 뛰듯이 올라온 적도 있었는데
살이 많이 찐 지금은 천천히 올라와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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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다.
이후로는 서장대까지 올라갈 길만 남아있다.
화성 성곽 중에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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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엄쉬엄 가다가 이게 마지막 고비다.
저 위에 올라서면, 거기부터 서장대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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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보이는 이 것이 '서장대'이다.
당시에 나는 이게 서장대인줄 몰랐다.
서장대 뒤로 보이는 '서노대'가 서장대인줄
알았었다. 난, 서노대 위로 올라가 내려다보는 걸 좋아했다.
 
거기에 올라서면 뭔가 속이 시원했고, 그 밤에 선선했던 공기가 좋았다.
지금도 그렇지만 속마음을 잘 털어내지 못하는 성격 탓에 답답함이 많았었는지, 시험 공부할 때 스트레스가 컸는지, 선경도서관에 와서 밤까지 공부하다 보면 으레 한번씩 혼자 올라 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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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서노대에서 봤던 풍경은 이제 보이지 않았다. 서노대에서 성벽 너머로 풍경이 있었는데, 거기에 나무들이 자라서 시야를 모두 가렸다. 위 사진은 서장대에서 본 모습이다. 
화성에서 가장 높은 곳이여서 망을 보는 곳이라고 알고 있는데, 이젠 나무들에 가려 잘 안보인다.
 
그래서 아쉬웠다.
어릴 때 봤던 그 모습을 보지 못해서 내가 잘 못 기억하나 싶기도 했다. 그땐 마냥 막막했는데 지금은 성인이 된지도 10년이 넘어섰다.
당시에 내가 내뱉던 한숨섞인 공기가 맴돌다 날 맞이한 것 같았다. 그 공기에 그때 막막해했던 느낌이 다시 들어왔지만,
지금은 여유로운 마음가짐으로 들이셨다.
 
그때의 눈가가 촉촉해져 있던 나를
오늘의 숨으로 토닥여 주는 것 같았다. 
괜찮아, 걱정마. 잘 커서 직업도 얻고 결혼도 했고 2세를 계획하는 괜찮은 남자가 됐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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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땐 이쪽 풍경을 보지 않았던 것 같다.
밤이라 안보이기도 했겠지만 관심도 없었고, 망원렌즈가 아니면 이렇게 보기도 힘들었을테니까. 여기가 아마 장안문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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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로나 같은 가로수들이 있는 걸 봐서 팔달문 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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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장대에 당시 내 모습과 지금의 모습을 남겨둔 시간 같았다. 이번에 올라간 것은 답답해서라기 보다, 사진을 찍으려고 갔을 뿐이었다.
가다보니 그 시절 생각이 많이 났고, 온김에 위로해주고 간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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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달산 산책로로 내려가다 보니, 약수터가 있었고, 오랜만에 약수물을 마셔봤다.
정수기 물만 마시다 오랜만에 약수물이다 보니
괜히 배아파질까 걱정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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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단풍이 다 들지 않았지만
저렇게 벤치에 앉아 여유롭게 쉬시는 모습이 
막 들어선 가을을 천천히 오래 즐기시려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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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을 느끼기엔 너무 이른가 싶었는데
여기는 벌써 겨울이 진행되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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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행궁까지 내려와서 필름 스캔을 맡기러 가던 길. 아빠와 엄마가 점점 힘들어 하는데도, 아이는 마냥 즐거워하며 폴짝 뛰어 매달린다.
점차 커지는 아빠의 목소리. 아랑곳 않는 아이.
우리 부부에게도 아이가 찾아오길. 저런 추억을 쌓는 일이 생기길. 하지만 막상 저 상황에선 내 목소리도 커질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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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나무 아래 서있는 두 사람이 운치있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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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에 한번 와볼까 싶어 찍어놨다.
외관이 예쁘고, 막 화려하지 않지만 선명한 이 카페만의 특색이 나타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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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행궁에 많은 사람들이 나와 날씨를 즐기고 있었다. 필름카메라를 든 커플이 좋아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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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행궁을 지나 다시 선경도서관 정문으로 가던 길. 기와집과 가을 나무는 좋은 조합인 것 같다.
 
여길 다녀오고,
사진을 정리하는 지금도
서장대를 올랐던 중고등학생 시절의 내가 떠오른다.
 
지금 생각해보면 부모님 말 잘 듣는 착한 아이로 자라고 싶었고, 그래서 공부를 하려고 도서관에 갔고, 이게 바르게 사는 거라 생각했던 것 같다.
하지만 그게 내게 맞지 않았던 걸까 나름 방황했고, 왜 이렇게 답답했는지 알 수 없어 서장대를 올라 멍하니 여기저기를 내려다 본 것 같다.
 
결과적으로 진학한 대학교와 상관없는 직업을 가졌고, 이과인 줄 알았던 난 문과적인 일만 하고 있는 걸 보니, 그때 정확히 원하는게 뭔지도 몰랐던 불쌍한 청소년기의 나는, 속이라도 풀어볼까 하고 서장대를 올랐나보다.
 
앞으로라도 내가 원하는 걸 정확히 알아보고
이뤄내보고 살아가보자.
 
성인이 된지 10년이 지나서야
사춘기가 끝나는가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