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8. 6. 08:32ㆍ연수의 서재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좋아하는 작가다.
그의 모든 책을 다 보지는 않았지만
보는 책마다 그의 재밌는 상상력이
진한 감동을 주었다.
보통 SF적인 소설을 주로 썼던 것 같은데
이번 소설은 사실적이다.
세계 근현대사의 굵직한 사건들을 두고
그 뒷 배경에 이 책의 주인공들이 등장한다.
마치 그들이 그 사건들을 일으킨 사람들인 것처럼.
사실에 기반한 소설이다 보니
진짜로 이런 인물이 있을 것만 같았다.
* 난 세계사를 전혀 몰라서 911 테러 나오기 전까지
다 그럴듯한 허구인 줄 알았다.
책의 소개에 '두 여자의 대 격돌'이라는 표현이 있다.
그 말이 딱 맞다.
집단지성과 그 힘을 중요시하는 여성과
개인의 특출함을 중요시하는 여성 간의 대결.
체스로 시작된 두 여성의 대결 구도가
전 세계를 무대로 한 정치적 싸움으로 이어지고
마지막엔 목숨을 건 체스 한판으로 끝 나는 이야기다.
처음에는 공산주의와 민주주의의 갈등을
그리는 줄 알았다. 니콜은 '집단'을 모니카는 '개인'을 대표하니까 그런 줄 알았다.
물론 니콜은 공산주의 진영에 속했고
모니카는 그 반대에 섰지만 체제에 관한 이야기는 아닌 것 같다. 내용의 초점은 단체와 개인 같다.
나는 당연히 집단지성과 그 힘이 개인을
이길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무리 특출나도 개인이 단체를 이기겠나 싶었다.
그런데 개인의 특출함이 집단을 충분히 무너트리고
큰 파동을 일으킬 수 있음을 두 번째 체스 대회에서
보여줘 상당히 신선했다.
이야기가 전개되는 내내 두 여성의 대결은 계속된다.
그리고 그 결과 승패를 분명히 보여준다.
그리고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토대로 책의 마지막에
결국 누가 이길 것 같은지를 독자에게 묻는다.
마지막 체스 대결에서
니콜은 모니카가 눈치채지 못하게 소형 중계 장비로
전 세계 체스인들에게 체스 현황을 송출하고
그들의 의견을 취합해 다음 수를 놓고,
모니카는 오로지 자신만의 생각으로 이에 맞선다.
책을 덮으면서
난 또 자연스럽게 모니카가 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전 세계인의 생각으로 두는 전략을 과연 개인이 이겨낼 수 있을까 싶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 보면 집단 지성이
과연 통일된 전략을 구사할 수 있을까 싶었다.
매 순간 의견이 분분하고 제한된 시간 안에 모인
그 의견이 꼭 옳고 바른 정답일지 의문이 들었다.
책 내용은 몰입감이 상당했다.
긴장감이 이어지다가도 쉬어가면서
이야기 흐름이 적당히 빨랐다.
답답하게 질질 끌지도 않으며 확실한 결과를 보여주고 다음 이야기로 넘어갔다. 꽤 빠르게 읽을 수 있었고
이 작가를 좋아하는 팬이라면.. 뭐 추천할 것도 없다.
알아서들 읽으실 테니.
지금까지가 주된 주제에 대한 이야기고
번외로 성에 대한 인식을 다시 하게 되었다.
니콜은 대부분 남성들과 교제를 하고,
방탕하게 성관계를 갖는 모습을 보이는 반면에
모니카는 남자, 여자 가릴 것 없이 연애하고
오히려 여자들과 더 깊은 교제를 한다.
처음엔 좀 불편했다.
방탕한 성생활이든, 동성 간의 연애든.
하지만 내가 생각이 열리지 않았을 뿐
요새는 인정해야 하는 관계라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 난 아직 받아들이기 힘든 것 같다. 동성간의 연애는.
가만 생각해 보면 모니카의 연애는
동성이든 이성이든 서로 '의지'가 된다면
남자와 여자 그 성이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는 것 같다.
결혼을 해서 아이를 꼭 나와 내 배우자의 DNA로
이뤄지도록 하고 싶다는 게 아니라면
의지할 상대로 동성이든 이성이든 무슨 상관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와 비슷하게
최근 돌싱글즈에 나왔던 남다리맥 커플을 보면서
아빠가 꼭 생물학적인 아빠여야만 하는가 하는 질문을 갖게 되었다.
분명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았지만,
새아빠의 사랑을 잔뜩 받은 딸은
새아빠를 정말로 믿고 따르며 같이 사랑하는 모습을
보면서 의문을 갖게 된 것처럼
이 책에서 동성 간의 연애에 대해
슬쩍 던져준 건가 싶기도 했다.
아니면 그냥 인물의 특성을 더 부각하기 위한
장치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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